2010년 4월 14일 수요일

이인영에 대한 회고

이인영에 대한 회고

 

이인영은 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1기 전대협의장을 지냈고 04년 서울 구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인간 이인영의 궤적은 운동가들의 행보와 관련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인영은 고려대 국문과 84학번으로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국회의원이 되기 어려운 커리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6월항쟁과 거기에서 전대협이 했던 역할 때문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05~06년 무렵부터 운동진영에 전문성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여기에는 첫째. 운동진영이 점차 제도화되면서 전문성이 결합되어야 하는 내적인 필연성 둘째. 조직행동 중심의 풍토를 반성하며 운동에 과학성을 접목하려는 시도 등이 작용했다. 06년부터 진보진영에 연구소 붐이 일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운동에 전문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개인적 진로 문제가 결합되면서 뒤늦게 대학원.각종 고시 등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늦어 버린 제도권 진입에 대한 뒤늦은 후회, 운동가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한 변화(이전에는 대중성.전투성 등이 중요한 덕목이었다면 향후에는 전문선+현장성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생각 등) 등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위 이인영의 사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중요한 것은 시대적 추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다. 05~07년 노무현 정권의 몰락, 운동진영의 쇠퇴와 함께 부상했던 이른바 전문성에 대한 갈구(?)는 어떤 시기의 산물이다. 그것은 MB 정권 등장 이후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진보진영의 토대를 튼튼히 닦으려는 장기적인 안목의 소산이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정세는 먼 미래의 무엇이 아니라 향후 몇 년안에 민중의 요구를 간명하고 함축적으로 대변할 무언인가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기 중요한 것은 이론적 정합성을 갖는 전문성이 아니라 대중의 이해를 실물화하는 구체적인 슬로건이다.

 

이러한 상황은 각 개개인에게 적용된다. 기득권층의 헤게모니가 강력하고 진보진영의 발전이 대단히 느리게 전개된다면 차분히 전문성을 쌓는 일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면서 제도권 진입의 문이 좁아지고 있고 결집을 요구하는 민중적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이럴 때라면 민중적 요구를 대변함을 통해 새로운 방향에서 제도권 진입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진보진영은 허송세월을 했다. 각 운동가의 입장에서 10년은 천금과 같은 시간이다. 30~40대 청년시절의 10년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속에 뒤늦게 제도권의 문을 두드리려 하지만 이미 제도권의 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 뒤늦은 후회가 10년 후 또 다른 후회를 부를 위험한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일수록 비제도권에서 자신의 활로를 구하는 역선택이 필요하다.

 

80년대 중하반 한국사회를 수놓은 전대협의 힘은 이인영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향후 한국사회를 강타할 힘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어설프게 제도권을 귀웃거리기보다는 새로운 파워의 진원지와 결합해 대중적 힘으로 인생을 새롭게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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