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와 서태지에 얽힌 추억
소방차가 처음 나왔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당시에는 남자가 춤을 춘다는 것이 무척 낯선 장면이었다. 그런데 가벼운 몸짓도 아니고 세 명이 떼거지로 나와서 노래보다는 춤에 어필하는 장면은 감각적으로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서태지의 노래는 더욱 그랬다. ‘난 알아요’하는 노래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따라할 수조차 없었다. 내가(또는 우리 세대)가 소방차와 서태지에 익숙해진 것은 그로부터 한 참 지난 후의 일이다.
정보통신문화도 그렇다. 87년 6월항쟁 당시 우리는 수동 타자기로 작업했다.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나는 워드프로세스를 거쳐 컴퓨터가 나오는 과정에 뒤쳐져 있었다. 뒤늦게 컴퓨터 로 작업을 하고 내가 작업한 내용이 프린터로 인쇄되어 나오는 과정에 환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하얀 인쇄지에 말끔하게 정리된 원고가 흘러 나오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컴퓨터 창을 두 개 열어놓고 작업을 한다. 하나로는 영화를 보고 다른 하나로는 만화를 보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컴퓨터 책상에서 밥을 먹고 어떨 때는 책까지 본다(미친 놈^^^) 아들 녀석이 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죽는다는 바이킹을 보는 것 같다. 아들에게 컴퓨터는 바이킹의 바다와 같은 존재인 듯 하다.
08년 대선 직후 진보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모모씨는 사이버 공간에 개입해야 한다며 이를 전개할 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참가자 중 한 사람이 그런 발상 자체가 사이버 공간의 문화와 다른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돌이켜 보면 진보연대라는 조직 자체가 이미 온라인 공간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구세대의 발상이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시대를 하나로 조합하려고 했던 모모씨는 10년 서울 생활을 마치고 최근 낙향했단다. 그가 살았던 10년을 기억하는 나로써는 시대와 부합하지 않는 인간의 쓸쓸한 말로를 보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은 이른바 세대 차이이다. 기회를 봐서 나중에 쓰겠지만 현 88만원 세대(이게 맞는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는 7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386 출신의 활동가들에 비해 비할 바 없이 똑똑하다. 봉건적 잔재가 짙게 남아있던 70년대 암기식 교육을 받고 자란 386세대에 비해 88만원 세대는 현대적이고 체계화된 교육을 받고 자라 지적 수준 자체가 대단히 높다. 이런 실력 차이는 노력을 통해 극복한다고 치자.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앞서 말한 세대 차이이다. 이것은 노력을 통해 좀처럼 극복할 수 없는 시대의 벽이다. 조선시대라면 삼강오륜 따위의 도덕률의 절대 가치일 수 있다. 그러나 현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케케묵은 과거의 일이다. 이 차이는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옛날이라면 시대의 차이는 대략 30년쯤의 한 세대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광속과 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현 시점에서 시대적 감수성은 ‘노인-중고령-장년-청년-청소년’ 등 10년 심지어는 5년 단위로 차이가 난다.
현재 진보운동은 아직도 87년 6월항쟁에 발원한 가치관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하에 있다. 산술적으로 87년 6월항쟁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의 일이다. 아마도 이 시간안에 적어도 서너 세대의 시대적 감수성이 역사의 단층선을 이루며 충돌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미 꼰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는 형식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시대의 격차를 메꾸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작업일 듯 하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미래를 대표하는 집단의 성장 속도 만큼 진보운동의 활력이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일단 트위터를 시작하시는 건 어떠실지 ^^
답글삭제- 반갑군요...
답글삭제- 트위터.... 많은 것을 빠르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