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고등학교 2년이 된 지 며칠 안된 아들을 자퇴시켰다.
- 아들은 93년생이고 상문고등학교에 다녔다. 아들에 따르면 상문고등학교는 아침 일찍 일어나 0교시를 하고 6~7시경에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을 한 자리에 모아 자율학습을 시킨단다. 그리고 학업시간에 선생들은 쓸데없는 농담 따위로 시간을 끈다고 한다.
- 내가 자퇴시킨 이유는
* 이런 식이면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들은 자유분방하고 게으른 편이다. 따라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지내다 보면 정작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하루 4시간 정도 내가 공부를 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첫 수업을 했다. 내가 짠 시간표는 수학.영어, 기타 모든 과목을 몰아 논술 이렇게다. 오늘은 첫날로 수학을 했다. 얼마나 가르쳤냐고 아마도 상문고등학교를 그냥 다녔다고 칠 때 2개월은 족히 걸렸을 분량을 2시간 정도에 끝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들은 머리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어려서 독서량이 많고 충분히 놀아서(나는 이걸 중시한다.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도록 충분히 놀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책상에만 오래 앉아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말 무식한 부모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이든 편견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아들이 충분히 놀기를 바랬다. 아들은 다큐멘타리, 미드 등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야한 것도 꽤 보고 게임도 많이 하더니 점차 전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정도면 내년에는 어쨋든 간에 2학년 때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놀 수 있을 듯 하다.
* 아들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아들은 나와 달리 대범하고 사교적이며 좋은 것을 좋아할 줄 안다. 나는 아들의 성격이 부러울 때가 있다. 선생님.부모님께 엄청난(?) 칭찬을 받고 자란 나는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남들이 칭찬할 법한 일을 하는 버릇이 있다. 아들이 성격이 그렇다면 2년쯤 논다고 별 문제는 없을 듯 했다.
*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다를거라 생각했다. 인구구성을 보면 83년을 고비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가 매년 50만명 쯤 늘고 있지만 55~63년생인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에서 55년생이 은퇴하는 숫자보다 15세 이상 인구로 진입하는 숫자가 훨씬 적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고려하면 나는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청년실업.학벌과는 다른 형태의 고민을 하게 될거라 생각했다.
-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나 같은 아버지 또는 지적 모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배님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종종 아드님과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드는걸요^^
답글삭제대안학교 아이들을 몇번 과외한적 있었습니다. 대부분 예술계열이긴했었지요.
답글삭제자연과 벗삼아 놀줄도 알고 철학, 여러 고전들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사고할줄도 알고. 부럽더군요.
인문사회계열쪽에 대안학교애들이 있다면 기존 이데올로기를 상대적으로
창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도 있을듯해서 다른 쪽으로 얘들은 경쟁력이 있겠구나
난 상대도 안되겠는걸 ㅋ 라는 생각도 해봤었습니다.
대안학교나 다른방식의 교육을 고민한 사람들 중 후회하는 사람들은
주류아이들의 스펙에 게임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때더군요.
뭐 다른 쪽으로 경쟁력이 있기때문에 쉽게 좌절할필요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긴했어요.
어쨌거나
저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우등생이 아닌 친구들은 '자존감'이 거의 없었어요.
수학과 영어에서 경쟁이 뒤쳐진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했을까요.
모든 세상은 국영수를 잘하는 것을 기준으로 돌아갔을텐데 말이에요.
부산에서 거의 꼴찌에 가깝게 성적이 나온 우리반애들은 수업시간마다
너희는 꼴통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야했습니다. 결국 반애들은 우등생인 저하나 잘키워보자고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저는 공부하라고 하고 청소는 자기들이 해주었지요.
학교에는 치열한 생존경쟁보다 ' 무기력' 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수한 '이불공주'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 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무기력과 졸음만 올 뿐입니다.
자신의 진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드님과 같이 세미나도 하고 그래요 ㅋㅋㅋㅋ
덧.
학교후배가 서울대 '교육저널' 에 쓴 글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http://kixzero.egloos.com/4118482
진지하게 읽다가 마지막 줄에서 왠지 좀 웃었네요! 하핳
답글삭제저 역시 선배님 결정 지지합니다.
'그래도 졸업장은 따야지'라는 말들을 쉽게 하는데, 그 '빛나는 졸업장'을 위한 기회비용이 너무나 큰 현실이죠. 자퇴 같은 것은 거의 고려조차 해보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왔는데, 가끔씩 일찍 자퇴하고 그냥 놀았거나 대안학교 나온 친구들이 부럽더군요. 뭐 저야 공부 외엔 별 특기도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 사람 사는 방식이 여러가지 있는 건데, 보통 어른들은 너무 한 가지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내가 이런 결정을 하는데는 네가 휴학하고 이리저리 놀어 다니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답글삭제- 자랑을 좀 더 하자면 오늘 미분에서 극대.극소와 그래프 개형을 가르쳤는 쉽게 따라 한다. 학교를 다녔으면 올 가을에나 배울 내용일텐데 말이다.
@백치미 - 2010/03/10 15:36
답글삭제하하, 왠지 책임감(?) 느껴지는데요? 나중에 아드님 공부라도 봐드릴게요 ;ㅂ; 영어는 가르칠 수 있음 ;ㅂ; ㅋㅋ
학교에서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사회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퇴로 인해 잃는 것이 있더라도 그만큼 얻는 게 더 있으면 괜찮은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고2때 자퇴한 김현진의 <네멋대로 해라>를 아드님이 좀 읽으면 좋을 거 같네요.
자퇴가 아쉬울 점은 위에 레이언니 말대로 '스펙'에 대한 고민이 들 때 + 동기동창이나 동문 형성이 안된다는 점 정도일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친구관계를 잘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위에 김현진씨 같은 경우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지내면서 외로움을 많이 탔다더군요.
참고로 제가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꼭 하고 싶은 점은
답글삭제일찍, 많이 자고 운동 많이 하는 겁니다. 아세요? 특목고, 명문고 출신 아이들이, 특히 남자애들이 키가 작은 거.(통계치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그렇답니다) 잠을 못자서 그런 겁니다, 잠을. 10시-2시에 자야 키가 큰다는데, 특히 남자애들은 고등학교 때 키가 많이 크기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자는 게 꼭 필요합니다.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어도 키는 때 놓치면 안된다는! 운동도 마찬가지구요.(그 운동 말고.. exercise...) 한창 축구도 하고 놀고 싶을 나이인데 교실에만 가둬두는 건 너무 가엾잖아요. 그러니까 건강도 나빠지고 체력도 좋지 않구요. 아들이 바라는대로 악기나 운동도 배우고 많이 놀게 하시면 좋을 듯. ^ ^
@미운오리 - 2010/03/10 22:32
답글삭제- 이건 중요한 정보인데... 특목고와 키와의 관계해서 글 하나 써라
- 참고하자면 내가 그랬다. 워낙 야행성이라 10~2시는 내가 가장 왕성히 공부할 때였으니까...잠을 안잔 것은 아니고 6시~9시(저녁)에 자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