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1일 수요일

쌍용자동차 투쟁과 원칙에 대하여

쌍용자동차 투쟁과 원칙에 대해

 

3.30 한겨레신문에는 쌍용자동차와 관련한 다큐멘타리 ‘당신과 나의 전쟁’에 대한 소개와 이를 제작한 태준식의 멘트가 소개되어 있다. 태준식은 “해고는 자본가들에게 고용유연성의 방편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며 “싸움은 패배로 끝났지만 끝까지 원칙을 지키며 77일을 버텼다는 사실이 우리가 쌍용차를 기억해야할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태준식씨가 ‘원칙’이라는 단어를 무슨 의미로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진보진영에서 쌍용.용산 등 처절하고 비장하게 끝까지 싸운 투쟁을 흔히 원칙이라며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무엇이 원칙인가?

 

쌍용자동차와 같은 처절한 갈등은 2010년 한국사회에서 날마다 거의 전쟁처럼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 노인 문제는 한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참사를 빚으며 조용히 마감되고 있다. 55~63년에 태어난 712만명에 이르는 1차 베이비 붐 세대는 사회적 경쟁이 심화되는 속에서 자녀들에게 무모한 사교육을 시키면서도 그들의 못 배운 부모들의 쓸쓸한 말년을 적당히 모른 채 하고 있다. 한해 70만명에 달하는 태아 중 30만명이 낙태를 당하고 1년에 근 1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조건에서 특별히 제조업 노동자에게 관심을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운동의 견지에서 본다면 가장 극적이고 처절한 투쟁은 02~06년 벌어진 전통 농민들의 서울상경투쟁이다. 02년 대선 전야에 벌어진 서울 상경투쟁에서는 4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인구 중 무려 13만명을 불러 올려 일상시기의 대중운동은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려운 장엄한 투쟁을 전개했다. 03~06년 한국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이 위대한 투쟁은 07년을 경계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제 다시는 저곡가-수입개방에 반대하는 전통 농민의 싸움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농촌은 대도시의 숨막히는 경쟁에 지친 도시민의 새로운 쉼터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2010년 현 시점에서 2000년대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서열화된 신자유주의 질서에 항거하여 벌어진 장엄한 농민들의 투쟁을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87~89년 고졸.생산직.대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투쟁은 90~07년 한국대자본의 성장과 함께 체제내화된 바 있다. 08년 이후 세계경제위기를 계기로 버블에 기초한 인위적인 가수요가 파열되면서 한국의 제조업 노동운동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아마도 조선.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에서 쌍용자동차와 비견되는 처절한 저항이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02~06년 농민들의 싸움과 어떻게 다른가?

 

원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현재와 같이 세계사적인 전환이 누적적으로 한국사회에 밀어닥치고 있는 조건에서 원칙이란 고정된 실재가 아니라 격동하는 시간의 흐름에서 그 운동이 과거를 대변하는가 미래를 대변하는가에 달려 있다.

 

소리없는 전쟁을 치렀던 노인들의 고통은 이제 조용히 사멸해가고 있다. 노인문제는 이제 정치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의 영역으로 퇴장했고 몇 년전까지 노인문제를 두고 벌어졌던 격전은 이제 그들보다 다소 연소한 50~60세 장년의 저학력들을 강타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 또한 노인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용산 참사는 이들 중고령 저학력자들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과거’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순차적으로 한국사회를 강타할 생산직 노동운동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02~06년 한국사회운동의 주역이었던 농민과 비슷한 양상을 띄며 쇠락해 갈 것이다. 이들 또한 불행히도 ‘과거’와 더 깊이 연루되어 있다.

 

반면 고려대 김예슬.변호사 김용철.농촌을 새롭게 일구고 있는 진보적 인텔리들의 귀농.서울 도심지의 다종다양한 공동체 운동.보건교육 등 사회.공공서비스와 연관된 노동운동 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500만 노인들의 소리없는 절규를 적당히 외면했다. 이제 이들을 돌보는 문제는 정치사회적 갈등의 영역을 비켜나 사회복지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들의 사회복지는 미래를 대변하는 집단, 청년.대도시 중서민이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재편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노인들의 소리없는 투쟁은 노인들의 정치사회적 발언권을 조직하는 문제가 아니라 청년.대도시 중서민의 요구를 분출시켜 전 사회적 관계를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재편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02~06년 농민들의 투쟁은 흘러간 과거를 다시 복원하는 양상이 아니라 대도시 소비자, 새롭게 발흥하는 공동체 운동과 결합하여 미래의 전망과 비전을 제시하며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 글에서 언급한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노동운동도 이들 싸움에 즉자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흥하는 청년.보건교육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길에서 활로를 열어야 한다.

댓글 5개:

  1. 국회환노위 보좌관을 2년동안 했던 저로서는 완전히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글이네요...환노위 2년동안 오히려 노동운동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노동운동에는 계급성보다 공동체성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되더군요....쌍용차투쟁때 가장 뼈아팠던 것은 진보진영이 사람들을 많이 못모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주민들이 극도로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을 싫어한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슬프더군요. 공장근처의 한 영세자영업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평소에 오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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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직 자세히 고민해 보진 않았지만, 좀 고민은 드네....

    생각 좀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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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댕 - 2010/03/31 14:18
    완전 동의해요. 공감하구요.

    쌍차투쟁 뿐 아니라 이제 거의 모든 투쟁이 그런 듯합니다. 운동권식으로는 '연대'하지 않으면 주류적 표현을 빌리자면 '상생'하지 않으면 고립될 수 밖에요.



    저는 농업문제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농업경제학을 살펴보면서

    규모화니 겸업농이니 전업농이니 이런것은 이미 대안적 논의를 상실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역경제와 함께 연동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가 없었어요. 4학년때 이후 이 고민은 좀 손놓긴 했었는데

    그때 당시 생각엔 전농이 지역경제에 지역농업이 관여하는 여러 법안을 만들거나 정치에 관여하여 (기초의원이나 조례나 등등)학교나 다른 단체, 식당 등과의 지속적 제공, 지역끼리의 교환 등을 적극추진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다시 좀 고민해봐야겠지만요.

    뭐 직접 연관된 얘기는 아니지만..





    전반 한국사회의 경제구조나 대안을 모색하는데

    지역경제, 지역 공동체가 함께 서로 도와가는 모습들이 중심인듯이 느껴집니다.

    국제정치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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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가 이야기 했던 원칙이란 노조 집행부의 원칙, 즉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원칙을 지켰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사실 그들은 끊임없이 갈등했습니다) 해고하지 말라는 대중들의 요구가 끝까지 지켜지려 했다는 의미에서(물론 협상과 타결은 집행부가 했지만) 원칙이란 단어을 썼지요. 짧디 짧은 인터뷰 기사의 한단어를 가지고 어떤말씀을 하시려 하는지 맥락이 잘 잡히진않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오해 없으시길 비는 차원에서 덧글 남깁니다. 아~ 제가 작업하면서 많이 느꼈던건데 쌍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동안의 정규/생산/대공장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일반화 시키기에는 여러면에서 다른 측면들이 있었음을 남깁니다.(자주 들어오는 블로그라서 우연찮게 보게되었네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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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하고 싶었던 글을 썼지만 막상 이렇게 마주 대하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군요

    - 먼저 참 어려운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큐멘타리를 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제작하기를 바랍니다.

    - 저는 84학번으로 대학 4학년 때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95~05년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두 번에 걸처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처지에서 하고 싶은 던 이야기는 쌍용.농민투쟁.자영업투쟁 등 일견 민중의 처지를 대변하여 함께 한 싸움이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 "정규/생산/대공장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일반화시키기에는..."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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