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든 생각
- 위 대비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지는
- 미래 담론, 가치로 당신은 무엇을 지지하는가이다. 첫째. 자율.자치가 확대되고 인간과 자연이 동화되며,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우리의 미래인가 둘째. 인간의 조직화된 힘이 보다 강화되고 인간의 사회적 연대와 통일성이 강화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인가?
위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 현재 인류가 감당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는 신자유주의, 패권주의 등과 같은 사회정치적 문제와 함께 그러한 사회정치적 문제들이 지구온난화.저출산고령화.에너지 및 수자원 등 자연적인 문제와 깊이 연동되고 있는 점
이런 조건에서 자치와 분산. 자율과 개성이라는 담론과 가치를 뿌리끝까지 밀고 가면 향후 인류의 미래는 상상하기 어려운 참화가 발생할 것
이미 60억이 넘어 100억명으로 성장하고 있는 조건에서 화석연료.수자원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발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전자는 이미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10~20억일 때면 몰라도 60억을 넘은 조건에서 이는 대참사로 이어질 것, 가야할 길은 국민국가, 대기업 차원에서 발전한 과학기술을 인류 전체 차원으로 발전시켜 국민국가 차원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양자가속기, 핵융합, 태양열의 이용 등을 추진해야 함, 이 발전 속도에 따라 인류의 미래 상당 부분이 결정될 것
- 철학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자면 인간과 물질세계의 경계를 흐리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 불교나 생명운동 등이 그러한데.....이미 환경파괴는 인간이 자연세계와 융합되어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었음음, 오히려 인간의 건설적인 개입으로 환경파괴를 제어해야 하는 것, 이는 철학적으로 보면 인간과 물질세계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질세계의 경계를 보다 분명히 하고 인간의 물질세계의 개입의 폭과 방향을 바꾸는 문제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인간의 물질세계에 대한 개입이 근대 이후에만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것, 밀.쌀.옥수수 등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특정한 농작물이 선택되어 논과 밭을 이루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개입이 진행된 것, 수많은 야생동물 중에서 말.소.돼지.개 등이 양육된 것도 결국은 인간의 선택임, 인간의 물질세계에 대한 개입이 이뤄지지 않은 세계는 원시 공동체인데 원시공동체는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원시적인 야만으로 가득찬 공포의 세계임, 인간과 인간의 갈등은 없었을지 몰라도 맹수의 위협, 질병으로부터 그대로 노출
- 미래는 인간의 사상감정이 다양하고 개성있게 발현될까? 다른 말로 하면 인류의 사상감정의 통일성이 점차 약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할까?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류가 많아지는 조건에서 다양성의 확대란 사회적 갈등을 동일한 토대위에서 해결할 기제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함, 이것은 갈등을 조장할 것, 또한 지구온난화, 실업,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근대에 발명된 보편적인 사상감정과 조직들 가령 민주주의, 과학과 이성, 합리성, 국민국가, 사법제도 등이 보다 발전하여 범지구적 과제와 현실에 걸맞는 새로운 통일적 기준을 마련하게 될 것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좌파 일각에서 주장하는 자율.자치.개성 등의 논리는 상황에 대한 일면적인 주장, 환경.불교 등에서 말하는 인간과 자연의 동화는 관념적 급진주의 nl에서 말하는 친농.제조업 생산직에 대한 강조는 시대의 발전을 거꾸로 보는 것임
진보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대원칙은 과학과 혁신 그리고 이를 위한 인간집단의 규모와 조직성을 보다 발전시키는 것
저는 사상적인 부분에 투철하지 못하여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에 간혹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편입니다.
답글삭제제 생각에 자율, 자치, 개성의 확대가 진보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조차 충분히 정착하지 못한 반증인 것 같은데요, 아마 가부장제와 같은 봉건성이 너무나 뿌리깊어서 그런 것일 테죠. 아, 이거 정치학개론 수업 시간이 떠올라서 머리가 복잡합니다만, 진보가 연대와 통일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해도 그 방식은 분명 과거와는 달라질 겁니다.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방식의 조직화나 동질적 집단을 형성은 어렵고 의미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탈민족주의/자율주의 등 일체의 포스트모더니즘사조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주의등의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통제와 조절의 대상이라고 봅니다.
답글삭제선배님은 현재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간의 조직화된 힘이라 하였는데, 그 주체는 (적어도 한국에서)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인 국가와 자본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 신자유주의적 국가와 자본은 당면 문제의 해결보다도 이윤의 추구에 급급한 실정입니다. 홉스가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인민주권을 양도하고자 한 리바이어던이 지속불가능한 사욕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가와 자본을 진보로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국가와 자본의 민주화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민주화/자유화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개인의 원자화, 그리고 그에 따른 개인의 자본에 대한 종속심화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의 폭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배님 말대로 자율주의만으로는 현실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유화 자체를 부정해야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원자화가 아닌 더 많은 민주화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미 자율성의 단맛을 안 개인들이 자유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기는 힘든 실정이며, 국가, 자본, 사회가 서로서로를 통제하던 과거의 물질적 기반도 대량생산-대량소비를 가능하게한 세계적 저발전상태에서 비롯한 것일테니까요.
푸코의 말처럼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을 국가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시에 국가에 연결된 원자화 유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처럼 하나의 갈등-전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갈등-전선과 이로써 결성되는 공동체들의 확산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보라보라돌이 - 2010/02/25 13:52
답글삭제- 어렵군요...
- 천천히 더 이야기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