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이 북에서 월남하여 오랜 기간 자영업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자영업이 친근하다. 나는 지금까지 방배동에 20여년을 살았다. 20여년을 살면서 방배동 자영업의 흥망성쇄를 관찰하곤 한다.
- 예전에는 적지 않게 많던 비디오 가게, 문방구, 수퍼 등은 거의 없어졌다. 그나마 몇군데가 버티고 있는데 거의 시간 문제로 보인다. 나름대로 소자본으로 경영이 가능한 틈새 시장은 대부분 옷 수선, 미용실 등이다.
- 얼마 전부터는 경쟁적으로 파리 바케트, 맥도널드, 탐앤탐스 등 세련된 인테리어에 커피와 빵 정도를 주로 하는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방배 2동을 둘러 싼 대로변에만 줄 잡아 20~30개가 들어섰다. 상권에 비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생긴다고 싶었다. 그리고 파리 바케트의 경우 유사한 타 상점도 문제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파리 바케트를 또 오픈하도록 한 것은 심하다 싶었다.
걱정도 잠깐 슬슬 경쟁력을 상실한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다. 며칠 전에는 총신대역 근처에 조그맣게 차린 파리 바케트가 문을 닫았다. 여기도 결국은 자본 싸움이다. 한달쯤 전 동네 외진 곳에 깔끔한 커피 숍 공사를 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젊은 청년들이 투자비를 아끼느라 직접 인테리어를 하는 장면이 예뻐보였지만 할 수만 있다면 말리고 싶었다. 장사가 안될 것이 너무 뻔해 보였으니까...아니나 다를까 아침마다 지나다니는 커피솝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주인이거나 주인 친구쯤 되는 20대 청년들이 책을 보며 가게를 지키는 것이 다였다.
- 외환위기 당시 가장 커다란 격변의 진원지가 바로 자영업이다. 40~50대 직장에서 짤린 노동자들은 어김없이 피자집.치킨집 등 만만해 보이는 가게를 차렸고 만만한 만큼 허무하게 무너졌다. 99~2002년 1차 주식버블, 부동산 버블이 생긴 점을 고려하면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덤비느니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는 것이 옳았다. 옳은 정도가 아니라 가게를 한 사람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심하면 고스란히 투자비를 날린 반면 부동산에 눈을 뜬 사람들은 우습게 몇 억씩을 거머 쥐었다. 이것이 당시 40대의 인생을 갈랐다. 대체로 성실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은 기회를 잃었고 이재에 밝고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이 뭉칫돈을 챙겼다. 열심히 일한 자는 망하고 투기한 자는 흥하는 잔인한 시대였다.
- 조만간 동네 구멍가게를 몰아내고 수퍼 체인점이 들어서던 광경을 이번에는 방배동 대로변에서 보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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