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후배 녀석 하나가 신영복 선생의 글을 들어 보라며 들려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깊은 사색과 여운을 주는 글이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신영복 선생의 글에 그닥 큰 감동을 받는 편은 아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은 좋은 글이지만 사회역사의 영역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에 버금가는 글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글들을 즐겨왔다. 김옥균.마키아벨리.한비자... 마오의 대장정, 2차대전 동유럽에서 벌어진 독일군과 소련군의 격전,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을 수놓은 수많은 인물들...
- 내가 정작 땅을 치며 울었던 것은 비틀즈의 let it be였다. 어렸을 때라면 달랐을까? 어려서부터 수백번은 들었을 노랫말이 40이 넘어 절절하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때문이었을까? 냉정하고 쌀쌀하던 어머니는 어린 아이 마냥 누워 있고 비틀즈의 어머니는 지햬의 말을 들려 준다며 그냥 편하게 버려 두라고 따뜻하게 속삭인다.
나는 늦은 밤 이 노래를 들으며 많이 울고 많이 즐거웠다.
- 어려서는 삭막(?)했는데 운동을 하고 나서는 유난히 눈물이 많아졌다. 메아리의 청아한 노래소리가 울려 퍼지던 아크로폴리스 광장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친구들도 유독 메아리의 공연이 울려 퍼지던 시간이면 공부를 멈추고 창가를 메우곤 했다. 87년 7월 8일 연세대 백양로 광장에서 이한열 추모사를 하러 등단하신 문익환 목사님은 추모사는 하지 않고 수많은 열사들을 한명씩 한명씩 외쳐 부르며 추모사를 대신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을 추모하며 목놓아 울던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맞아 노상에서 단식이란 걸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미래야 뻔하지만 김진숙의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 나는 내가 이성적이지 않을 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 나는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라거나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는 따위의 추상화된 명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요새는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냥 강권통치와 싸우겠다며 모여 앉은 20대 청년들의 깨끗한 열기가 좋았을 뿐이고, 고상한 추모사 대신 통곡으로 자리를 대신한 노목사의 처신이 좋았을 뿐이다. 승패와 무관하게 거리에 나앉은 김진숙이라는 여자가 좋을 뿐이고, 요새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총명한 초년생 정치인의 좌충우돌하는 어리숙한 행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친구가 노회찬이나 심상정처럼 잔머리를 굴렸다면 나는 그녀를 보는 재미가 덜했을 듯 하다.
- 신영복은 신영복의 몫으로 남겨 두자. 신영복은 60년대 자신이 선 시대와 싸우다 20년이라는 시간 감옥을 살고 나온 세대의 일원이고 우리는 그냥 우리지 않을까? 나는 신영복과 같은 심원한 현명함이 들어서기에는 let it be의 가사가 너무 좋다. 나는 내가 미쳐갈 때가 좋다. 승패를 따지기에는 너무 어리숙하고 순진했던 우리가 그냥 좋다. 신영복이 보여주는 지혜로움은 한 30년쯤 후에 승패가 더 이상의 여지 없이 명백해졌을 때 그 때가서 술이나 쳐먹으며 천천히 갖도록 하자. 신영복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렇다.
마지막 문단, 참 울림이 있네요
답글삭제이런 글 많이 쓰셨으면 좋겠어요 ^^
trackback from: 운동의 경로의 감사의 표현
답글삭제1. 역사에도 발전 경로가 있듯이(이게 논리적으로 정합하든, 그렇지 않든) 운동 주체에게 발전 경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나이로 하는 것도 명성으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운동을 시작하거나, 지켜오거나, 아직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적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운동 경로가 보이기 마련이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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