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순 비판 3) 신자유주의 반대와 민족자주화 전략
박경순의 글에는 신자유주의와 관련, 애매한 논리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어떨 때는 신자유주의를 신제국주의처럼 쓰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신자유주의 반대와 민족자주화 전략을 구분하여 후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이 애매함속에 박경순의 핵심적인 주장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박경순은 “신자유주의 체제는 미국 주도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지배와 착취 수탈체제”라고 규정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케인주의의 구조적 한계’, ‘계급적 역관계의 변화’, ‘경제의 금융화와 세계화를 가능케 하는 물질기술적 조건의 형성’ 등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초국적 독점자본(제국주의세력의 새로운 전략적 대응의 산물”(밑줄 필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여전히 자주-종속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논문의 전반부는 80년대 쓰여졌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는 논지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규정이 달라진다. “양자(신자유주의와 민족자주화, 필자 첨부)의 모순은 현실에서는 통일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양자는 분명히 모순의 성격이 다르며 그 해법도 같지 않다. 구조적 종속을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파생된 모순을 간과하는 것은 전략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되며 반대로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파생된 모순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면서 구조적 종속을 경시하게 되면 개량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현재 한국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구조적 종속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을 기본으로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파생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결합해 나가는데 있다. 그리고 구조적 종속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은 단순히 경제적 영역에서 펼쳐지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 펼쳐지는 정치투쟁인 것이다”(밑줄과 기울임 필자)
위 인용문에서 박경순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경제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술적 투쟁(위 인용문에서, “구조적 종속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을 기본으로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파생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결합”)이고 민족자주화 투쟁은 이와는 구분되는 정치적 영역에서 펼쳐지는 정치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경제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술적 투쟁이다??? 그런데 박경순은 논문의 앞 부분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미국 주도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지배와 착취 수탈체제라고 규정한 바 있지 않은가?
두 부분에 대한 애매한 설명은 결론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박경순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정권의 성격”은 “민족자주정권”이라고 규정한 뒤 “신자유주의 기치를 앞세우지 말고(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를 내리자는 견해로 오해하지 말 것) 민족자주의 기치를 앞세워 민족자주에 동참할 수 있는 모든 정치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특히 초국적 독점자본의 정치적 대표체인 미국에게 주된 타격을 돌리는 전략을 확고히 구사해 미국의 정치경제적 군사적 지배에 반대하고 분노하는 모든 정치세력들을 결집하는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 반미의 기치에 동의하는 모든 정치세력들의 대동단결 통일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를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밑줄 필자)라고 쓰고 있다.
계속해서 “반미에 동의하는 정치세력이란 단순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재단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오히려 찬성하는 정치세력이라도 다른 여러 가지(민족적, 종교적, 역사적) 이유로 반미자주화 투쟁에 동의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와 문제점에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계급 계층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군사적 패권주의와 전쟁정책에 대한 반대와 분노로 인해 반미의 기치에 동의하는 정치세력들이 매우 폭넓게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진영들은 바로 이러한 세력들을 하나의 정치전선으로 결집해 민족자주화 투쟁의 동력으로 만들고 이 힘을 기초로 정권 전취투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민족자주화 전략이다”(밑줄 필자)
박경순은 위 인용부분에서 신자유주의와 민족자주화 전략을 구분하고(글 전반부에 시장과 국가,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를 의도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기제이다) 전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말고 전자를 “하나의 정치전선으로 결집해”(이는 문맥상 전술적 투쟁임을 의미한다)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군사적 패권주의와 전쟁정책”에 반대하는 “민족자주화 투쟁의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06년 한미FTA 투쟁 당시 자주계열 일부로부터 희한한 주장을 들은 바 있다. 주장의 요지는 한미FTA 반대 투쟁은 일종의 민생.경제 투쟁이고 2006년 한미FTA 투쟁의 한계는 반미로 역량을 집중하지 못한 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하에서 07년 3월 협상 타결 직전에 한미FTA 반대 투쟁보다는(또는 그것과 함께) RSOI 반대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순의 글은 위 주장의 연장선하에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가 진보진영 전체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조건에서 박경순은 글 전반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미국 주도의 초국적 독점자본의 지배와 착취 수탈체제”라고 규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박경순의 입장에서는 한미FTA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등의 구호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전술적 투쟁(개량주의)이지 정치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략적 투쟁(정치투쟁)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글 후반부에 가서는 신자유주의 반대와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투쟁을 구분하고 “신자유주의 반대를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핵심은 진보진영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전면에 걸지 말고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정치군사적인 영역에서 민족자주화 투쟁을 전면에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자주계열의 인식에 따르면 정치투쟁이란 정치군사영역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신자유주의 반대와 같은 경제영역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반대가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성장한 시대 상황과 전통적인 인식을 고집하려는 태도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의 전반적인 기조는 원칙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결론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도 이런 괴리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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