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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세계 |
동아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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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
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독자통화시도하자 NAFTA 추진 |
- 북유럽, 영국 등에서 금융위기 |
90년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 EAEG 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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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후반 |
② 미국이 일본의 AMF 제안을 저지(* 참고) |
④한국과 인니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러시아/브라질/터키/아르헨티나 등으로 확산되고,미국의 경우의 LCTM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미국 입장선회 |
① 97년 9.10 일본 AMF 제안, 300억불 출연 ③ 97년 11월 APEC 회담에서 AMF 사장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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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
99년, 2002년 유로 출범 |
② 동아시아의 통화.무역 협력이 강화되고, WTO 협상이 유럽과는 문화, 브라질 등 G20 등과 농산물 분야에서 난항에 부딪히자 양자 구도로 전환 ④ 2006년 11월 홍콩 APEC에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공식 제의, 동아시아 무역협력에 제동 |
① 아세안+한중일 등 동아시아의 통화.무역 협력 확대 - 2000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 04년 중국+아세안 FTA - 05년 일본+아세안 FTA, 아시아 벨라지오 그룹 등 ③ 한국: 2002년 한일 FTA 폐기,05년 한중FTA에 대한 제안을 거부하고 06년 한미FTA로 선회 |
* “미국 재무부, 특히 로렌스 서머스 같은 이는 이 사태를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일본 정부의 도전으로 간주했고 즉각적인 대응책에 착수”, 9.17 티모시 가이스너와 테드 트루먼 아시아 급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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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년 소련 붕괴로 탈냉전, 유럽이 달러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로화 도입결정
- 미국 이에 맞서 NAFTA 출범
- 신자유주의 본격화, 영국.북유럽 등에서 금융위기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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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9.10 일본 AMF 제안, 9.17 미국 이를 저지함
- 97년 12월 한국 IMF 구제금융 신청, 98년 5월 인니에서 폭동 발생
- 97~98년 동아시아 사태가 러시아.브라질 등으로 확대되자 미국 입장 선회, 구제금융의 댓가로 IMF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대신 달러 융자, 저금리, 구제금융 등을 용인
* 이를 배경으로 98년 4월 한국에서 저금리 용인
- 미국과 말레이지아의 파워게임, 말레이시아가 미국과 IMF식 구조조정을 거부하자 서방 언론들은 마하티르가 독재자라며 공격(안아르 이브라임 부총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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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말 이후 동아시아에서 통화.무역 협력에 대한 노력 가시화, 미국은 ‘동아시아가 아닌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물타기
- 중국과 일본의 경쟁으로 동아시아 협력이 어려워짐(중국은 아세안과 한중일, 일본은 여기에 더해 뉴질랜드.호주.인도 등 추가, 결국 미국의 물타기 구도를 용인함 셈)
- WTO 다자협상이 난관에 봉착하자 미국은 양자구도로 전환, 한일.한중 FTA가 무산되고 한미FTA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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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금융위기로 상황 돌변
- 미국 IMF 당시와는 달리 구조조정을 요구하지 않고 한미통화스왑에 동의
- 중일간 갈등이 완화되고 한중일 통화스왑 등 동아시아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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